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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듣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였다. 나는 또 말하기를, “이 사람이 올 때에 우리 주상(主上)의 명령을 받자왔는데, 우리 주상께서는 이 사람의 원행(遠行)하는 것을 염려하시며, 이곳에 와서 유련하는 기일도 15일을 넘기지 못하도록 정녕히 말씀하셨습니다. 벌써 15일의 기일도 멀지 않았으니 바라건대 잘 주선하여 빨리 돌려보내어 이 정한 기일을 넘기지 않도록 함이 이 사람의 소망입니다.” 하니, 궁본소일은 대답하기를, “두 가지 일은 모두 이해하였습니다.” ---------------------------- 이상 종합해봤을 때 이때까지만(1877년) 해도 일본은 조선에 대해 어느 정도 (물론 자국의 국익



그 성명은 한반도에서의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극렬한 좌우투쟁의 신호탄이었다. 이상. 끝.. 제 21편에서 계속...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서식하는 송도동족제비 인사드립니다. 스물 두 살 카라이프 올려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고3 (19살) 으로 올라갑니다. 대학교에 붙어서 어머니께서 빨리 면허 따보라고 하셔서 손 잡고 운전면허학원 가서 등록 하고 왔습니다. 보배드림 하는 만큼 자동차를 너무





감사합니다. 귀국의 성의는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이번 걸음에 또한 재주 있는 사람 몇 명을 데리고 와서 제도는 입으로, 기기(器機)는 손으로 모방하고, 풍속은 귀와 눈으로 기억하고자 하였으나, 다만 두 나라가 오랫동안 의심하여 멀리하던 끝에 다행히 봄의 일(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의 체결을 말함)이 있게 되었으니 일찍 와서 사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개월 후에는 반드시 귀국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올 것이므로, 우리 조정에서는 이보다 먼저 수신(修信)하고자 하여 갑자기 행장을 차렸던 것이니





우리나라에 오면 다시 확실히 의논할 날이 있을 것이니 하필 구차스럽게 눈앞의 충고만 따라서 갑자기 책임만 얼버무려, 우리에게도 소득이 없으면서 당신들의 후의만 저버리겠습니까?” 하였다. 모리야마 시게루가 말하기를, “공의 말씀 또한 옳습니다.” 하고는, 이내 자기 나라의 군사가 정예하고 양식이 풍족하므로 외환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뜻을 많이 말하므로, 나는 대답하기를, “귀국은 이미 이같이 부강하게



힘을 다하여 우리의 의견을 알려드리겠습니다.” 3. 조선학문에 대해 문부성의 문학료(文學寮)에서 대승(大丞) 구귀융일(구키 류이치,九鬼隆一)는 극진히 나를 접대하였다. 술자리에서 나에게 묻기를, “귀국의 학문은 전적으로 주자(朱子)만 숭상합니까? 아니면 다른 학문도 숭상하는 것이 있습니까?” 하므로, 나는 대답하기를, “ 우리나라의 학문은 5백 년 동안 다만 주자만 숭상하였을 뿐입니다 . 주자를 어기는 사람은 바로 난적(亂賊)이란 죄목으로 처단하였으며, 과거(科擧) 보는 문자까지도 불가(佛家)ㆍ도가(道家)의 말을 쓰는 사람은 귀양보내어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8성(省)의 경(卿 장관(長官))을 차례로 찾아보게 되어 있으니, 만약 경(卿)을 만나지 못하면 다만 명함이라도 드리고 돌아오는 것이 예의입니다. 모레 예를 행한 후에 즉시 이 예를 행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므로, 나(김기수)는 대답하기를, “이것은 일찍이 행하지 않은 예입니다.”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이것은 각국에서 통행하는 규정인데 무엇이 옳지 않겠습니까? 또 그전의 통신사도 각로(閣老, 과거 막부의 대신들) 를



걸음은 다만 수신(修信)하는 것으로 중점을 삼고 모든 유학(遊學) 관계는 훗날로 미루고자 하오니 이 뜻을 양해하기 바랍니다. ” 하였다. 궁본소일은 말하기를, “만약 회답하는 국서에 ‘우리 황상께서 명령하셨으므로 귀하가 자주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조금 구경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귀하에게는 예전 규칙을 깨뜨려 버렸다는 꾸지람은 없을 것이니 어떻겠습니까?” 하므로, 나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그것은 더욱 불가한 일입니다. 어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자기 체면을 손상시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같은 지시는



저무는 45년 12월28일 밤 박헌영은 38선을 비밀리에 넘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 5명이었다. 어둠 속에서 몇 사람들이 나타나 이들을 맞았다. 일행은 소련군 지프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박헌영의 2차 비밀 평양방문이었다. 미소간 결정 후에도 북 반응 없자 답답|김일성·소 군정사령관 만나 지침 받아 박헌영이 38선을 넘은 그날 오전 한반도에는 엄청난 정치적 폭풍이 몰아 닥쳤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 방침이 서방통신을 타고 전해진





이런 것에는 생각이 미칠 여가도 없었으며, 또한 이것은 모두 허문(虛文)이므로 실사(實事)에는 이익됨이 없는 것이라 하였다. 그들의 옛날 풍속의 숭상은 신도(神道)를 먼저 하고 불교를 나중에 하였으며, 또 불교를 먼저 하고 유교(儒敎)를 나중에 하였는데, 신도와 불교가 이 모양인데 유교는 다시 무엇을 논의하겠는가? 그러므로 아이가 자라 교습(敎習)시킬 적에 나이가 8세에서 15세까지는 그 국문(國文)과 함께 한자(漢字)를 읽게 하고, 한자를





되었으므로 외환이 닥치는 것은 마땅히 우리에게 힘을 빌 일이 없는데도, 오히려 이같이 정성스러우니 귀국의 성의는 우리 조정에서도 또한 어찌 이것을 알고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 사람이 재주가 없으므로 실로 갑자기 구경하는 동안에 소득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마는, 바라건대 조금도 의심하고 조격(阻隔)함이 없이, 모든 일을 지시하여 가르쳐 주신다면 이